예레미야 24:3-7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두 광주리에는 각각 좋은 무화과들과 나쁜 무화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쫓아내신 유다 백성들은 좋은 무화과처럼 좋게 여기실 것이고, 결국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백성들과 이집트로 간 백성들은
나쁜 무화과처럼 여기셔서 모두가 그들을 악한 백성으로 여기게끔 하실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쫓아내시는구나” 순종하고 따른 자들과 그렇지 않았던 자들의 상반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쫓아내셔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그동안 저질렀던 죄악의 결과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받아들여야 했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들의 나중도 책임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포로 생활의 어려움을 피해 선택하는 게 나쁜 걸까?’에 대한 질문이 생기지만 일단 잠시 접어두고,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옳은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게 하셔도 삶에서 살아내는 건 또 쉽지 않습니다. 저의 생각을, 저 자신을 버려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안여쭤봐도) 이미 내가 몇 번 경험해봐서 알지.’ 혹은 ‘(늘 옳은 선택을 하는)그 사람이 맞다면 맞는 거야!’ 등등
선택할 때 여러 기준들을 가져와 봅니다. 주로 급한 대로, 생각나는 대로, 뭔가 큰 이끌림(감정)으로 선택하곤 합니다.
그게 옳을 때도 있고, 솔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언제 우리 삶에 개입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묻는 것,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뭔가를 사려고 할 때
“하나님, 맛있는 거 사 먹고 싶은데, 가족들 건강을 좀 생각해서 양파를 맛있게 해 먹으면 더 좋겠지요?”까지도 포함한다면,
지나온 시간 속에서 저와 하나님과의 대화는 아주 비지니스적이고, 문제해결 중심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이번 일이 잘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 아시죠? 저 진짜 힘듭니다. 도와주세요. 이번만 도와주시면
앞으로 잘 준비할게요.’ 등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어서, 하나님이 해결사로 제 삶에 개입하시길 원하는 게 저의 주된
기도 생활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라는 바를 아뢰고 그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씀드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진정한 대화와 교제는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니까요.
언제 들었는지 기억이 안날 만큼 오래된 이야긴데, 어떤 사람이 미국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신기한 현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뭔가 혼잣말을 중얼중얼하는 것 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물어봤더니 걸으면서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오늘 날씨 최고네요!”, “주님, 오늘 아침에 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집을 나섰는데 마음이 안 편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와 같은 일상적인 내용들이었다고 합니다. 친밀함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의지한다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우리 온 사랑의교회 모든 분들도 주님과 이 친밀함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친밀함 속에서 온전하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025년 7월 25일 금요일. 리딩지저스 핵심읽기 예레미야 24장)
예레미야 24:3-7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두 광주리에는 각각 좋은 무화과들과 나쁜 무화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쫓아내신 유다 백성들은 좋은 무화과처럼 좋게 여기실 것이고, 결국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백성들과 이집트로 간 백성들은
나쁜 무화과처럼 여기셔서 모두가 그들을 악한 백성으로 여기게끔 하실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쫓아내시는구나” 순종하고 따른 자들과 그렇지 않았던 자들의 상반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쫓아내셔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그동안 저질렀던 죄악의 결과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받아들여야 했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들의 나중도 책임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포로 생활의 어려움을 피해 선택하는 게 나쁜 걸까?’에 대한 질문이 생기지만 일단 잠시 접어두고,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옳은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게 하셔도 삶에서 살아내는 건 또 쉽지 않습니다. 저의 생각을, 저 자신을 버려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안여쭤봐도) 이미 내가 몇 번 경험해봐서 알지.’ 혹은 ‘(늘 옳은 선택을 하는)그 사람이 맞다면 맞는 거야!’ 등등
선택할 때 여러 기준들을 가져와 봅니다. 주로 급한 대로, 생각나는 대로, 뭔가 큰 이끌림(감정)으로 선택하곤 합니다.
그게 옳을 때도 있고, 솔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언제 우리 삶에 개입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묻는 것,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뭔가를 사려고 할 때
“하나님, 맛있는 거 사 먹고 싶은데, 가족들 건강을 좀 생각해서 양파를 맛있게 해 먹으면 더 좋겠지요?”까지도 포함한다면,
지나온 시간 속에서 저와 하나님과의 대화는 아주 비지니스적이고, 문제해결 중심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이번 일이 잘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 아시죠? 저 진짜 힘듭니다. 도와주세요. 이번만 도와주시면
앞으로 잘 준비할게요.’ 등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어서, 하나님이 해결사로 제 삶에 개입하시길 원하는 게 저의 주된
기도 생활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라는 바를 아뢰고 그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씀드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진정한 대화와 교제는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니까요.
언제 들었는지 기억이 안날 만큼 오래된 이야긴데, 어떤 사람이 미국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신기한 현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뭔가 혼잣말을 중얼중얼하는 것 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물어봤더니 걸으면서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오늘 날씨 최고네요!”, “주님, 오늘 아침에 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집을 나섰는데 마음이 안 편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와 같은 일상적인 내용들이었다고 합니다. 친밀함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의지한다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우리 온 사랑의교회 모든 분들도 주님과 이 친밀함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친밀함 속에서 온전하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025년 7월 25일 금요일. 리딩지저스 핵심읽기 예레미야 24장)